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4년 한국시리즈 (문단 편집) == 여담 == * KBO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수도권 팀들의 한국시리즈 대결이다.[* 이후로는 1998, 2000, 2003, 2007, 2008, 2018, 2019, 2021, 2022년에 수도권 팀들 간의 한국시리즈가 성사되었고, 이 중 서울팀들 간의 한국시리즈는 [[2019년 한국시리즈]]가 유일하다.] * 1994년의 우승으로 LG는 해태, 롯데에 이어 3번째로 V2를 달성한 팀이 된다. 이렇게 가장 먼저 V2를 달성한 3팀이 10여년 뒤에는 [[엘롯기]]라고 묶이며 하위팀의 대명사가 된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 LG는 1990년에 이어서 이 시리즈에서도 4연승 스윕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팀 우승 2번을 모두 스윕으로 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 LG는 1990년에 이어서 이 시리즈도 일요일 원정경기에서 4승째를 거뒀다. * '''이 시리즈 도중에'''[* 3차전이 시작하기 하루 전.]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터졌지만 [[이태원 압사 사고|28년 후]]처럼 정부 차원에서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지는 않았다. * 양팀의 감독 [[이광환]]와 [[정동진(1946)|정동진]]은 당시 40대의 젊은 감독으로서 이른바 '신사고'를 야구계에 과감하게 도입한 지도자였다. 이광환이 투수분업화 도입을 통해 경기 내적인 요소를 바꿨다면, 정동진은 과감하게 팀의 주축 투수들을 재활시키는 리빌딩을 실행하고 성공하면서 경기 외적인 요소를 바꿨다고 할 수 있다.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대결한 두 감독이 우리나라 투수들의 선수 생명을 연장시키는데 많은 공을 세웠다는 점에서 '''"1994년은 한국프로야구의 기념비적 분기점"'''이라고 평가하는 주장도 있을 정도. * [[1994년 폭염]] 항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1994년은 한국 역사상 가장 무더운 여름의 한 해였다. 이런 가운데 가장 무더운 검은색 유니폼을 입고 역대 최고의 시즌을 만들며 우승을 했기 때문인지 LG 올드팬들 중엔 날씨가 더워지면 은근히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후 2020~2022년에 3년 연속으로 8월을 월간 승률 1위를 달성하였다. 이때도 원정 경기에서는 검니폼을 입고 있었지만 2021시즌에는 홈경기가 더 많았고, 무엇보다도 8월 원정 승률은 0.400(2승 1무 3패)로 홈 승률인 0.778(7승 1무 2패)에 비해 썩 좋진 못했다.] * 또한 현재는 각종 스포츠에서 응원용으로 사용되는 막대풍선을 이 때 LG 트윈스가 최초로 사용하였다. * 5차전은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이자 그 해 한국시리즈 직전에 열린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의 금메달로 당시에는 엄청난 국민적 영웅이었던 [[황영조]]가 시구를 할 예정이었으나 4차전에서 시리즈가 종료되면서 아쉬워 하는 팬들이 많았다.[* [[2014년 한국시리즈|20년 뒤]]에는 비슷한 이유로 [[마리아노 리베라|세계 최고의 클로저]]의 시구가 무산되어 많은 야구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 1994년 우승 멤버들은 이후에도 구단 행사에 꽤 많이 초청되고 있다. 하지만 [[노찬엽]], [[서용빈]] 등 코치로서 팀에 해악을 끼친 멤버들도 상당수 있어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 [[김용수]], [[김재현(1975)|김재현]] 등 팬들에게 좋게 추억되는 선수들과 나쁜 기억으로 남은 선수들이 명확히 갈리고 있다. * 태평양의 4연패 스윕으로 맥 없이 진것 처럼 기억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1,3,4차전이 1점차의 승부였고 특히 1차전은 연장 혈투, 3차전은 태평양이 유리했던 점을 보았을 때 생각외의 접전이었다. 특히 1, 4차전의 경우 흐름상으로 태평양이 앞서나가거나 역전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럿 있었지만 훗날 정동진 감독이 술회했듯이 선수들이 모두 초긴장 상태라[* 삼청태는 94년 한국시리즈가 첫 진출이었다.]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3차전은 외야수의 만세 사건 하나로 분위기가 반전되어 5이닝 퍼펙트 피칭이 빛이 바래버린 케이스. * 2020 시즌 종료 후 [[류지현(야구)|류지현]]으로 개명한 유지현[* 두음법칙으로 인해 유씨로 살다가 원래 성씨로 다시 쓰게 되었다.]이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멤버로는 처음으로 LG 감독이 되었다. [[김동수(야구)|김동수]]도 LG 수석코치가 되었다. 그러나 김동수는 2021 시즌 이후 물러나 해설위원이 됐으며 류지현은 2022 시즌 페넌트레이스에서 2위를 차지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업셋을 당해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며 재계약이 불발되었다. 후임은 공교롭게도 1994 한국시리즈 준우승 팀 태평양의 주전 유격수였던 [[염경엽]]이고, [[2023년 한국시리즈|29년 후]] 드디어 한국시리즈 직행에 성공했다. * 94년 시즌 직후 방출 예정이었던 김선진은 1차전 끝내기 홈런을 계기로 재계약에 성공했고, 2000년까지 선수생활을 이어나갔다.[* LG 입장에선 1차전 승리가 시리즈를 주도할 수 있기 때문에 동점인 상황에서 김용수까지 투입할 정도로 필사적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이상훈과 김용수를 투입한 상황에서 태평양에게 1차전을 내줬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김선진의 끝내기 홈런은 상당한 가치가 있었다.] * [[김성갑]]은 1차전 태평양의 1번 타자로, 또 4차전의 마지막 타자로 타석에 나서며 특이하게도 한국시리즈의 시작과 끝을 함께했다. * LG와 태평양은 1994년 시즌 개막전과 마지막인 한국시리즈 4차전을 인천 숭의야구장에서 치렀다.[* LG는 1993년 시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당시 LG가 4위를 하고 OB가 3위를 하면서 최종순위에서 OB에게 밀리면서 LG는 1994년 개막전을 1993년 당시 8위였던 태평양의 홈에서 치러야 했다. 당시 KBO 리그의 개막전 홈팀은 전년도 순위 기준으로 정해졌다.] 다시 말해 1994년 시즌은 LG와 태평양이 같은 구장에서 시작하고 끝났다. * 1994년 한국시리즈 이후로 1999년과 2006년[* 공교롭게도 둘 다 [[한화 이글스]] 진출 시즌이다. 상대팀은 롯데(1999)와 삼성(2006). 게다가 한화는 빙그레 시절부터 한국시리즈에서 수도권 팀을 상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을 제외하곤 2023년까지 매번 수도권 팀(서울, 인천, 수원 연고팀) 중 한 팀 이상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2003년부터는 2006년을 제외하고 수도권팀들 모두 한국시리즈에 매번 진출하고 있다. * [[LG그룹]]은 이 당시 '럭키금성그룹'이란 기업명을 사용했는데 LG 트윈스의 이번 우승을 계기로 이듬해인 1995년이 시작되자마자 그룹명을 LG로 바꾸게 되었다는 썰이 돌기도 했다. 정작 LG그룹 자체에서는 이러한 썰을 부인하고 있지만 워낙 LG의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그로 인한 영향을 받지 않았냐는 추측들을 했을 듯. * [[정동진(1946)|정동진]] 감독은 [[1990년 한국시리즈|1990년]]에 삼성 감독으로 LG에 스윕당한데 이어 이번에도 태평양 감독으로 LG에게 4연패로 무너지면서 한국시리즈 통산 8전 8패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웠다. * 3년뒤 LG트윈스는 [[1997년 한국시리즈]]가 다시도전 하였으나 해태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 우승하는 바람에 결국 준우승을 그치고 말았다. * 4년뒤 [[태평양 돌핀스]]는 [[현대 유니콘스]]로 팀명이 바뀌었고, [[1998년 한국시리즈|양팀이 한국시리즈에서 맞대결을 하였으며, 태평양-현대는 이때의 패배를 복수하는데 성공했다.]] 구단 사상 첫 우승은 덤. * 이 한국시리즈가 [date]까지 '''LG 트윈스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 이때 태평양에서 주전 유격수로 뛰었던 [[염경엽]] 선수는 이후 2023년 LG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29년만에 정규우승을 확정짓고 21년만에 한국 시리즈에 진출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